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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사동의 쌈지길을 지나 조계사에 가는 길은 사람과 소리, 냄새, 길게 자란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세찬 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찰의 안으로 들어서자 축하를 위한 연등과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는 몇몇 관광객들이 전부일 뿐, 흔히들 생각하는 염불이나 목탁의 소리, 은은하게 퍼져가는 향내는 오간데 없이 비어 있을 따름이었다. ()이니 해탈(解脫)이니 하며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불교의 교리는 익히 들어온 바 있지만 아무래도 그렇지 자신들의 가장 큰 기념일을 앞두고 한다는 준비가 고작 진입로 정도를 장식하는 연등에 불과하다니.




사찰 내부의 이러한 겸허함은 어이없는 한편 무척 매력적인 것이기도 했다. 심플함, 모던, 미니멀 등의 유행이나 시류, 요컨대 겉치레의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소박하고 검소한 천성을 보는 기분에 알 수 없는 감개가 샘솟았다.


 



2.


불교의 교의를 요약한 삼법인(三法印)은 다음과 같다.


현실은 모두 고통의 연속인데(일체개고 一切皆苦) 이 고통은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실체 없이 시시각각 흐르고 변화하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지만(제행무상 諸行無常) 사람은 자신의 존재와 소유가 고정 불변, 영원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고통이 지속되는 것이므로 지혜(반야 般若)와 반성을 통해 자신의 욕망, 집착, 나아가 자기 자신까지를 버림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제법무아 諸法無我)’




현실은 과연 고통의 연속인가? 우리가 나고 자라 병들어 죽기까지의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기쁨과 행복조차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슬픔과 비애, 멜랑콜리의 이면에는 유희가 있듯이(발터 벤야민, '독일 비애극의 원천') 고통이 있다면 기쁨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불가는 이때의 기쁨이 바로 고통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무언가를 얻어 기뻐하는 것은 그것을 잃는 슬픔을 내재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며 하염없이 변하는데 고정 불변, 기쁨의 한 상태만을 집착하는 것은 그것의 변화와 상실에 의해 고통과 분노, 탐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유희 이후의 공허함이 멜랑콜리를 야기하고 또 다시 극복을 위한 유희가 연쇄되듯이, 상실의 고통은 생성의 기쁨을 위한 원동력이 되지만 삼라만상의 무상함은 이것의 영원불멸을 약속하지 않는다.




생애는 그렇게 고통(기쁨)의 연속으로 가득 차 있어 이 과정에서의 탐욕, 분노(진애 瞋恚)와 어리석음(우치 愚癡) 등은 업이 되고, 이러한 업에서 연기(緣起)하여 심지어는 죽음과 생성을 반복하며(윤회) 되풀이되는 고통(기쁨)을 겪는 것이다.


기쁨이 고통의 다른 면이라면 우리는 이 끊임없는 연쇄를 끊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어리석음을 떨쳐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생의 주체로서의 확신 속에서() 고통을 야기하는 쾌락과 즐거움을 무조건적으로 인내하는 하는 고행이 아니라, 이들의 무상함을 깨닫고 심지어는 자신마저도 놓아 버린 채(무아 無我) 그저 흘러가도록 관조하는 경지를 통해 이루어낼 수 있다.


 



조계사의 전경과 그것이 담은 불가의 내용이 그러하듯이, 석가탄신일을 앞둔 사찰의 내부는 성탄절의 분위기만큼 기쁘거나 들떠 있지 않았으며 차라리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장인이나 직공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무미건조한 지루함이 아니라 견고하게 쌓아 올린 돌담과 기둥이 어떠한 흔들림에도 아랑곳 않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승려들은 조금의 동요 없이 사람들을 맞거나, 집기를 닦거나, 연등을 달며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을 맞이한다. 더 화려하게 축하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은 성인의 탄생도, 이들에게는 위대한 스승에 대한 감사와 예를 갖추는 것으로 족하다.




이 광경은 채움과 포화, 기복, 무의미한 탐진치(탐욕, 진애, 우치의 삼독(三毒)을 일컫는다.)의 장이었던 교회의 모습과는 색다른 청렴과 단정이다. 내세의 영원을 설파하며 구원을 부르짖던 교회가 그 누구보다도 현세의 갈증을 채우며 신도들에게 손짓하는 모습과는 달리. 생과 사, 끝내는 자신까지도 떨쳐내고자 하는 불가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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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빙구_e8b168 2020.05.08 01:14
    조계사도 좋지만 석가탄신일 직전에 봉은사가 좋아서 매년 가게된다. 날이 어둑해질때 가면 좋은데,
    연등도 이쁘고 야경도 좋다. 특히 봉은사에서 코엑스쪽을 바라보면 도심속 절에 있는 느낌이 오묘하다
  • 채승은 2020.05.08 10:08 작성자
    To. 빙구_e8b168
    2호선은 한결같이 북새통이라 약속 없으면 잘 안감
  • 빙구_1aa680 2020.05.08 04:38
    글 좋다 불교에관심많은데...
  • 채승은 2020.05.08 10:10 작성자
    To. 빙구_1aa680
    기독교는 말 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철학이론도 개론서가 넘치는데 이쪽은 그러지 못한게 아쉬움
  • 빙구_ba0e14 2020.05.08 07:36
    어려울 법도 한데 잘 읽히네
  • 채승은 2020.05.08 10:10 작성자
    To. 빙구_ba0e14
    ㄱㅅㄱㅅ
  • 빙구_de676e 2020.05.08 08:47
    좋은 말 잘 읽고 간다
    개인적으로 불교 사상에 관심이 많아서
    군복무 시절 2년동안 다녔던 기억이^^,,,
  • 채승은 2020.05.08 10:11 작성자
    To. 빙구_de676e
    오히려 군종스님은 정적인 이미지 떨쳐보려고 랩도하고 춤도추던데
  • 빙구_de676e 2020.05.08 12:48
    To. 채승은
    너네도 그랬냐
    우리도 군종스님, 호칭은 법사님으로 부르던 데
    엄청 개그맨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전방 부대 나왔는데
    여러분은 운이 존나게 없는거에요ㅇㅈㄹㅋㅋㅋㅋㅋ
  • 빙구_767b99 2020.05.08 09:21
    문장 진짜 존나 길다
    대부분의 문단들이 두세개의 문장들러 구성돼있어서
    읽기에 힘들고 의미가 혼동됨
    문장을 좀 더 간결하고 써야 읽어주지
    이건 독자들보고 읽으라고 쓴 글이 아님
    만약 그렇다면 잘못 쓴 글
  • 빙구_5b528a 2020.05.08 09:43
    To. 빙구_767b99
    나도 공감한다.. 문장이 너무 길어서 전혀 좋은 글이 아님
  • 채승은 2020.05.08 10:18 작성자
    To. 빙구_767b99
    호흡이 긴 문장을 쓰는건 항상 의식하고 고치려는 편임. 여기서도 첫 번째 문단처럼 올리면서 고쳐써야겠다 싶을 만큼 장황한 부분들이 눈에 띄기도 했고.
    원래라면 두고 다듬는 과정을 거쳤을텐데 인터넷 잡담글에 무슨 유난인가 싶어 그대로 올린게 바로 드러나버리네
  • 빙구_0b80f2 2020.05.08 11:39
    그냥 보면되는거지 글을 잘쓰고못쓰고 판단 ㅋㅋㅋㅋㅋ 굳이
  • 빙구_c6f468 2020.05.08 13:53
    To. 빙구_0b80f2
    ㄹㅇㅋㅋㅋㅋ
    신문사설도 아닌데 좀 길고 신경써서 썼다 싶은 글에는 항상 판단댓글 달리더라
  • 채승은 2020.05.08 18:11 작성자
    To. 빙구_c6f468
    일리잇는지적이고 신경쓰는부분이니가
  • 빙구_1292cd 2020.05.08 14:10
    ㅋㅋㅋ앵간하면 잘 읽었다. 그런데 글은 어떻구나 할텐데 다짜고짜 글솜씨를 평가 해버리네.

    읽기좋은 글이 아니라 못읽었다고 하는데 그럴땐 그냥 지나가는게 더 좋은 모습이 될수도.. 조금이라도 평가를 바라고 올리는 패톡이라면 몰라도 자게에서!! 물론 글쓴이가 문제없다면 나도 지나감 ㅎ
  • 채승은 2020.05.08 18:17 작성자
    To. 빙구_1292cd
    너무 늘어진 글은 좇기 힘들어서 대부분 버겁지.
    간결하게 쓰면 읽는 맛이라고 해야하나 리듬감이 죽는 느낌이라 늘여쓰는게 습관이 되어 있더라고.
    맺지를 못하고 몇 문장씩 연결짓다보니 주, 술어도 다 흐트러지고.
    더군더나 지류나 큰 모니터도 아니고 핸드폰 화면으로 보기에는 좋지 않은게 맞는 것 같아
  • 빙구_19a11b 2020.05.09 01:26
    전에 얼핏 교대다닌다는 글을 봤던 것 같은데 철학 전공한 느낌이 드냐 어째;;;
    글 잘 읽었담.
  • 채승은 2020.05.09 01:54 작성자
    To. 빙구_19a11b
    교대는 유사학문 가르치는 유사대학이야...... 빨리 졸업하고 학비벌어서 예술학 쪽 공부하는게 작은 꿈
  • 빙구_97d0b5 2020.05.20 00:59
    혹 불교의 교리 등 관련 입문서적 추천 가능해?
    어릴때 주변 어른 영향으로 절을 다녔는데 불경을 외워도 해석본을 봐도 뭔 말인지 몰랐는데 요즘 점점 하나 둘 알아가는 중인데 천성이 게을러서인지 뎌디네. 흥미롭게 읽을 만한 책 추천해줄 수 있나 싶어서 댓글 남겨봐
  • 빙구_fcbaf8 2020.05.20 21:25
    To. 빙구_97d0b5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사실 저도 작년에 지도교수님 강의에서 몇개 주워들은게 전부라.ㅎㅎ
  • 빙구_97d0b5 2020.05.20 22:40
    To. 빙구_fcbaf8
    우선 저것부터 도전해봐야지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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