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621 추천 수 10 댓글 9

1.

젊은 나이에 작고한 천재 시인 이상의 <이런 시>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 혼자서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혼자서 무엇을 생각하겠다는 것인가. 시인은 우리에게 무슨 생각을 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 없이, 단순히 그 내용을 어떻게생각할 것인지에 대한 태도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행히도 그 전말이 그리 길지 않기에(문장의 수로 따지자면 단 세 문장에 불과하다) 의문을 해소하고자 이를 공들여 읽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 ‘가 무엇을 그리도 꾸준히 생각하고자 하는 것인지 한번 살펴보자.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서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2.

내가 비록 그대를 사랑하고 있으나 내 차례(이번 생)에 그대는 나에게 오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그대를 늘 꾸준히생각하며, 또한 줄곧 어여쁘기를 바랄 것이다. 앞선 꾸준한생각의 대상은 가 사랑하는 당신이다. 물론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러니 는 줄곧 그대를 꾸준히생각(사랑)하고자 한다. 그대가 내내 어여쁘기를바라면서.


의 생각함의 전말을 알고 나니, 이 시는 이제 천재 시인의 명성에 걸 맞는 감각적이고 애틋한 사랑 시로 보인다. 다만 우리는 한 가지, ‘그다지 사랑하던이란 부분이 거슬린다.


그다지란 말에 뒤따라와야 할 것은 ‘~지 않다.(않은)’ 와 같은 부정형의 내용이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뒤에 사랑하는 그대를 이어 붙이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오류는 시적 허용으로 용납될 수 있으며, 적지 않은 수의 독자들이 그다지 사랑하던이라는 비문에서 보다 풍부한 감수성을 느끼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구절을,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효과적인 시적 허용으로 이해하는 것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이 시에 대한 탐구여기서 끝나는가?

 

시의 전문을 보자.


(1)

역사(役事)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 내어 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서인가 본 듯한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걸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2)

그날 밤에 한 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 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 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3)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서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4)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 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 버리고 싶더라

 

이상 <이런 시>


3.

 ‘그다지~’에서 ‘~어여쁘소서.’ 까지, 하나의 독립된 사랑 시로 여겨진 이 시는 사실 전체 시의 일부분(3)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전체 시 속에서, 사랑의 대상이었던 그대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공사인부인 시(전체 시)의 화자는, 일하는 도중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드는 커다란 돌을 끄집어낸다.’ 다른 인부들이 이것을 길가로 치워 놓았는데, 다음날 그 자리로 가보니 돌은 사라져 있다. 화자는 어쩐지 처량한 기분에 시(앞선 사랑 시)를 짓지만, 이내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바로 이것이 3, 사랑 시의 정확한 전말이다. 여기서 그대는 사실 가 사랑하는 이성이 아니라 그저 큰 돌덩이에 불과하고, ‘그대를 잊지 못하겠다거나 꾸준히 생각하겠다는 것 또한 실상 아무런 의미 없는, ‘돌덩이가 없어져서 어쩐지 아쉽다.’에 대한 그럴듯한 낭만주의적 포장에 불과하다. 그렇게 때문에 화자는 마지막에서 사랑하는 그대에 대한 조금의 애착도 없이 시를 찢고 싶은 마음이 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그다지 사랑하던이란 구절에 대해서도, 이것을 풍부한 감수성의 시적 허용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다지 사랑하지 않던을 축약한 비문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다.


4.

이제 우리는 <이런 시>의 전문을 통해 화자와 그의 감정, 그리고 그 대상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낸 듯하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이 시에 대한 탐구마쳐도 되는 것일까?


이상 시 연구의 대체적인 의견은, ‘정해진 해석이 없다.’ 이거나, 해석이 몹시도 난해하다.’ 1)이다. 그러니 (화자와 돌덩이 사이의 전말이 어찌 되었던 간에) 3연의 사랑 고백은 돌덩이를 보고 생각난 그대에 대한 진실한 감정일 수도 있고, 시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 또한 하등 쓸모없는 낭만에 대한 조소가 아니라, 정말 친근하게 느껴진 돌덩이에 대한 아쉬움일 수도 있다. 그 해석과 의미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은 없고, 다만 추측에 불과하다. 이미 작고한 시인에게 그 뜻을 물어볼 수 없는 노릇이니, 우리는 이 시가 지닌 본연의 의미알아낼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바르트의 말과 같이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의미는 결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끊임없이 요동친다.’2)


5.

이상은 신이 아니다. 그는 분명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아간 실존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의 시가 가진 의미는 우리 인식 너머의 신성이나 형이상학적 실재라고 볼 수 없다. 그의 시는 우리와 같은 인간의 지적 활동의 결과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보라, 깨우침이나 진리, 신성, 궁극적인 앎은 고사하고 우리는 (우리와 같은 인간인, 심지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저 시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우리의 능력은 생각보다도 더 유한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우리를 결코 좌절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런 사실을 알고, 이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앎, 의미의 떨림3) 시작된다


6.

시의 진짜 의미야 어찌되었든, 나에게는 그것이 애틋한 연심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무의미한 감성과 낭만에 대한 조소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시어들의 의미가 본성상 어떠한 것 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4)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던 이유는 자신의 무지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지 다른 것(진리 파악)이 아니다.

불분명한 이상의 시 해석과 같이, 대상의 근본적 의미를 파악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의미파악을 유보하는 것. 그러면서도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꾸준히 생각하는것 이것이야말로 지식을 탐구하는 가장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

1)  

이상의 시에 관한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들의 인터뷰

https://www.nocutnews.co.kr/news/4893003



2)

가치 (그리고 가치에 따른 의미) 는 그런 식으로 끊임없이 요동친다.”

롤랑 바르트, 이상빈 옮김, 롤랑바르트가 쓴 롤랑바르트, 1997, 서울 : 도서출판 강, p199


3)

바르트는 같은 글(롤랑바르트가 쓴 롤랑바르트)에서 의미의 떨림(Le frisson du sens)’ 과 같은 표현을 통해 우리의 불확실한 의미 포착에 대해 이야기한다.


“‘의미가 존재하고있지만, 그 의미는 잡을 수 있지않다. 굳지 않고 유체인 채로 가벼운 거품이 일어나 계속 떨린다.” (롤랑 바르트, 1997, 140p)


이때의 의미의 떨림, 요동치는 의미는 결코 부정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파악한 의미가 참된 앎이라는 독단이나 확신을 거부하는 것이며, 권위나 정치, 외압에 의한 의미의 고착(이데올로기적 사용)을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4)

우리는 각각의 외부 대상이각 대상의 다양성과 관련해서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말할 수는 있지만, 그 대상이 본성상 어떠한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ㅅㅅ투스 엠피리쿠스, 오유석 옮김, 피론주의 개요. 2012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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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빙구_aea37a 2020.06.14 01:30
    글 좋다
  • 빙구_eeff59 2020.06.14 01:57
    2번읽엇다 ㅊㅊ
  • 빙구_f51074 2020.06.14 06:35
    좋은 글이라 댓글달고 추천
  • 빙구_b667a2 2020.06.14 07:59
    육포를 씹는듯한 글이네요
  • 빙구_03075b 2020.06.14 08:16
    소쉬르가 생각나는 글
  • 채승은 2020.06.14 09:09 작성자
    To. 빙구_03075b
    확실히 소쉬르가 전개한 기호의 자의성, 의미와 지시기호 사이에는 어떠한 속성을 반영하는 것과 같은 관계가 없다는 이야기와
    대상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하자는 이 글의 논지는 비슷합니다.

    그러나 소쉬르는 대상과 기호 사이의 (자의적인)일련의 의미체계(랑그)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저는 이것이 이후 구조주의에서 밝히고자 한 '근본적 구조'와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글은 피론주의적 지식 탐구의 태도를 살펴보는 글의 서부로 쓰여졌기에, 후술될 내용은 지적해주신 소쉬르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진행하려고 합니다.
    색다른 관점입니다. 감사합니다.
  • 빙구_03075b 2020.06.14 11:07
    To. 채승은
    항상 흥미롭게 읽고있어요~
  • 빙구_c1de07 2020.06.14 10:03
    돌은 이뤄지지 못한 무겁고도 단단했던 사랑을 뜻하고, 역사한 것은 우연한 일로 다시 생각난 일. 무언가 본 것만 같은 기시감이 있지만 가져다버리는 일은 그걸 회피하려는 일. 허나 시를 지음으로써 여전히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는데 도입부에서는 그다지 사랑하지 않던 그대가 어느새 잊을 수 없고 내내 어여쁘기를 바라는 그대가 되는 태도의 변화. 하지만 다시금 그 사랑에게 놀아나는 듯한 자신에 분개하여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다시 잊어감. 그냥 빅붕이랑 똑같네
  • 빙구_b37fca 2020.06.14 19:11
    스크랩하고 낼 출근길에 읽어볼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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